시인을 찾아서
시인을 찾아서1, 2
신경림 지음
『시인을 찾아서』는 정지용에서 윤동주, 유치환, 박목월을 거쳐 신동엽, 김수영, 천상병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 문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22명의 시인의 생애와 시를 소개한 책이다. 신경림 시인은 한명 한명 시인의 고향을 찾아가 시인의 흔적을 찾고 소개하는 한편, 시인의 일화라던가, 지내던 삶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결코 길지않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시인과의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대표적인 시를 소개하면서 그 시가 가진 의미와 이미지, 또 시대 상황등을 자세히 곁들어 시에 대한 이해도 한층 쉽도록 도와준다. 우리 학창시절에 익히 배웠던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 등의 익숙한 시도 있지만 잘 들어보지 못했던 시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시 몇편을 소개해보면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함에다 차르르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찬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열심히 산다는 것> 안도현 참으로 생동감 넘치고 따뜻한 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시는 어떤가?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어지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달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까기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대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蜂房〉전문 참으로 외로운 시에서 막막한 슬픔 끝에 어쩌면 마음속끝 한줄기 위안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프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이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 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이요 -<어릴 때 내 꿈은> 도종환 우리 어릴 땐 이런 선생님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시절을 더 그리워 하는지도 모르겠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전문 작가는 이 시를 아래와 같이 풀이 한다. 이 시에서 주어는 풀과 바람 단 둘뿐이지만 바람은 비교를 위한 종 개념인 만큼 하나인 셈이다. 그 풀이 눕고, 울고, 울다가 눕고, 눕고, 울고, 일어나고, 눕고, 일어나고, 웃고, 눕고가 내용의 전부이다. 이것이 바람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다르게 바뀔 뿐이다. 첫 연에서 풀은 바람(동풍)에 나부껴 눕고 그리고 운다. 둘째 연에서는 풀은 눕지만 바람보다도 빨리 눕고 빨리 울고 먼저 일어난다. 셋째 연에서는 첫 연, 둘째 연의 내용이 바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다시금 강조된다. 모든 잔가지를 쳐낸 압축된 풀의 이미지가 되풀이에 의해 더 선명하게 부각되면서, 풀의 풋풋하고 끈질긴 생명력이 독자를 압도하는 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풀을 민중의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독법이 판을 치게 되었고, 1970~1980년대의 상황과 맞물리면서 마침내 풀은 민중 시의 가장 보편적인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풀은 어디까지나 풀로 읽어야지 관심화 된 상징으로 읽을 때 시는 자칫 속화된다. 김수영 시인은 결코 이런 관습적 상투적, 그래서 맥빠진 상징을 가지고 시를 쓸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시의 풀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중을 연역한다면, 그것은 역시 이 시의 풀에서 영구 집권을 노리는 삼선개헌을 둘러싸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들이 보인 형태를 연역해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자유이다. 요즘 시가 읽히지 않는, 시가 죽어가고 있는 사회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불과 10~20년 전만해도 대학교에서, 전철안에서 시집 읽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띄곤 했다. 그러나 사회가, 시가 조금씩 어려워지면서 또 사회와 시가 유리되면서 일 년에 시집 몇 권을 읽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1998년에 최초 출간된 이 책은 22명의 시인을 관조하면서 서정시 뿐만 아니라 생소한 서사시나 참여시 등을 소개하여 시의 다양성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으며 시인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또한 다시 시집을 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하는 명저이다. 또한 신경림 시인의 생각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