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이란 무엇인가

너른마루 2013. 2. 19. 17:05

 

 

 

정이란 무엇인가

 

정운현 지음

 

『정이란 무엇인가』

어딘가 짝퉁냄새가 나는 제목

실제 저자도 술자리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사실을 알고 지었다는(어찌보면 기발하고, 어찌보면 음....)

 

정(情)!!

한글자 만으로 어떤 과자는 대박을 칠 정도로 우리 민족의 가슴을 후려파고 흐르는 정서

정이란 무엇인가는 우리의 정(情)문화를 정의하는 한편 부모자식간, 부부간, 형제간, 친구간, 물건에 대한 것으로 나누어 일화를 소개한다.

 

먼저 정(情)에 대한 설명을 보자

 

정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색깔도 없다. 냄새도 나지 않고 맛도 없다. 무형, 무상, 무취, 무미다. 그렇다면 구상세계에서는 없는 것이 된다. 분명히 없는데 있는 것이 정이다. 존재하되 역동적으로 존재한다. 그 없는 것에 손을 데고 그 없는 것에 오장육부가 녹고 그 없는 것에 살이 여윈다

 

우리의 정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를 잘 표현한 문장이다.

 

저자는 정(情)문화의 폐단도 지적하고 있다.

 

최봉영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성이 정을 배태시킨 토양이 됐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근대 개화기 이후 한국의 비극적 역사가 정을 변질시켜 현재 비정한 한국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한국인들이 전통문화를 서구문화로 대처하는 방식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전통문화의 단절과 파괴로 인해 문화적 정체성이 크게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정의 세계 속에서 추구되던 이성적 측면 즉 정리(情理)는 서구적 이성(理性)으로 대체되었고 현재는 정감情感만 남았다는 것. 그러다보니 이치理致가 무시된 채 감정感情 중심의 삶이 정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법감정이니, 지역감정이니 하는 식으로 올바른 인식이나 질서 이전에 매사를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생겨나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참으로 일리있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원칙대로 이뤄져야 할 일들이 정(情)문화를 앞새워 어느새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패거리 문화로 인해 오염되는 일을 수없이 목격하지 않는가?

 

이 책에는 정에 관한 많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한편을 소개한다.

 

추사와 두 번째 부인 예안 이씨는 금슬이 좋았던 것 같다. 현전하는 추사의 한글편지는 모두 40통인데 거의 전부가 이씨 부인에게 보낸 것이다. 추사는 부인을 위해 일부러 한글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그의 편지에는 사대부의 권위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오직 병중에 있는 부인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뿐이다. 귀양살이 2년째는 “매양 잘 있노라 하오시나 말씀이 미덥지 아니하오니 염려만 무궁하오며 부디 당신 한 몸으로만 알지 마옵시고 2000리 해외에 있는 마음을 생각해서 십분 섭생을 잘하여 가시기 바라오며....”라며 아내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

서로 멀리 떨어진데다 연락수단도 변변치 않다보니 소식이 제때 도착할 리 없었다. 이씨 부인이 별세한 것은 1842년 11월 13일인데, 부고는 두 달 뒤인 이듬해 1월 15일에야 제주 땅에 도착했다 그런 사정을 알리 없는 추사는 부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별세 다음날인 14일과 18일 연달아 부인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 동안은 무슨 약을 드시며 아주 몸져누워 지냅니까. 간절한 심려로 갈수록 걱정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추사는 평소에도 유배지에서 부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안사람에게

 

오늘 집에서 보낸 서신과 선물을 받았소

당신이 봄날 내내 바느질했을 시원한 여름옷은

겨울에야 도착을 했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걸치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머리맡에 병풍처럼 들러놓았소

당신이 먹지 않고 어렵게 구했을 귀한 반찬들은

곰팡이가 슬고 슬어

당신의 고운 이마를 떠올리게 하였소

내 마음은 썩지 않는 당신 정성으로 가득 채워졌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워

집 앞 붉은 동백 아래 거름되라고 묻어주었소

동백이 붉게 타오른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

내 마음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소

문을 열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소

바다가 마당으로 몰려들어 나를 위로하여 하오

섬에는 섬의 노래가 있소

 

내일은 잘 휘어진 노송 한 그루 만나러

가난한 산책을 오래도록 즐기려 하오

바람이 차오

건강 조심하오

 

꽂꽂하기로 유명한 선비, 추사의 부인에 대한 애틋한 정이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따뜻하게 데우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