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3은
시가 내게로 왔다 1~5편중 중간에 해당하며 지난 10년간 새롭게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우선 이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시는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라는 시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정윤천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혼자서 부르며 왔던 어떤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만을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서늘한 열망의 가슴이 바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을 지나치다가 난데없이 파도가 일었거든 사랑이다. 높다란 물너울의 중심속으로 제 눈길의 초점이 맺혔거든, 거기 이 세상을 한꺼번에 달려온 모든 시간의 결정과도 같았을, 그런 일순과의 마주침이라면, 이런 이런, 그렇게는 꼼짝없이 사랑이다.
오래전에 비롯되었을 시작의 도착이 바로 사랑이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손가락 빗질인 양 쓸어 올려보다가, 목을 꺽고 정지한 아득한 바라봄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한사코 진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에라도 실려오는 실낱같은 향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다. 갈 수 없어도 사랑이다. 혼(魂)이라도 그쪽으로 머리 두려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이 시는 읽으면 읽을 수록 가슴 클해지는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나 이 시집에 담겨진 대부분의 시는 그리 쉽게 마음을 열러주지 않는데.......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멜랑콜리아
진은영
그는 나를 달콤하게 그려놓았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나는 녹기 시작하지만 아직
누구의 부드러운 혀끝에도 닿지 못했다
그는 늘 나 때문에 슬퍼한다
모래사막에 나를 그려놓고 나서
자신이 그린 것이 물고기였음을 기억한다
사막을 지나는 바람을 불러다
그는 나를 지워준다
그는 정말로 낙관주의자다
내가 바다로 갔다고 믿는다
“진은영의 시는 90년대 시의 서정적 동일성을 거부하면서,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시적 발화의 숨죽인 목소리와 분열된 육성을 드러낸다”(이광호)
이런 시는 어떤가?
발끝의 노래
신영배
바람이 문자를 가져간다
이것은 창가에 매달아놓은 육체이야기
창문을 열면
귀에서 냄새가 퍼졌다
그 발바닥을 보려면
얼굴을 바닥에 붙여야 하지
아무도 공중에 뜬 자국을 보지 못한 때
문자가 내려와 땅을 디디려는데
바람이 그것을 가져갔단 말이지
구더기처럼 그림자가 떨어졌다
한 줄 남기고 다 버려 우리들의 문학수업
시외로 가는 차량 근처에 너를 떼어버리고 오다
멀리멀리 가주렴 문장아, 내가 사랑했던 남자야
살갗 같았던 문장과 이별하고도
아름다운 시 한 편 쓰지 못하는 나는
목만 끊었다 붙였다
태양 아래 서서 부르는 노래
내 그림자 길이만큼 땅을 판다
내 그림자를 종이에 싼다
내 그림자를 땅에 묻는다
내 그림자 무덤에 두 번의 절
그리고 축문
오늘 나는 그림자 없이 일어선다
흰 눈동자의 날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을 완성할 즈음
내 발목을 잡는 검은손
어제 장례를 치른 그림자가 덜컥 붙는다
발끝을 내려다봐
끊은 목 아래
꿈틀거리는 애벌레들
이별은 계속된다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시인이라는 사람들이 우리와 많이 다른 사람임을 느낀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우리가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그렇기에 그들의 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어쩌면 이들은 우리가 언어라 부르는 그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인지도.
그렇지만 이 시들을 여러번 읽다보면 불연듯 일어나는 마음속의 어떤 감성....
이것이 시인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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