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독서의 기술

너른마루 2013. 10. 10. 18:17

 

 

책을 읽는데도 기술이 필요할까?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바로 그런 이유로 감히 주장한다. 남독濫讀(이것저것 되는 대로 읽는 것)은 결코 문학에 영예가 아닌 부당한 대접이라고 말이다. 책이란 무책임한 인간을 더 무책임하게 만들려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삶에 무능한 사람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허위의 삶을 헐값에 제공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에게 불꽃같은 에너지와 젊음을 맛보게 해주지 못하고 신선한 활력의 입김을 불어 넣지 못한다면, 독서에 바친 시간은 전부 허탕이다.

 

삶의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더 풍성한 힘을 얻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몰두할 줄 알아야 한다.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나가면서 기쁨이나 위로 혹은 마음의 평안이나 힘(정신 혹은 마음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줄줄 꿰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전혀 습득하지 않은 독자, 생소하고 새로운 문학을 아예 한 번도 접하지 않은 독자라 하더라도, 독서를 무한히 계속하고 더 세밀화하고 더 향상시키며 강화할 수 있다. 어떤 사상가의 어떤 책, 어떤 시인의 어떤 시라도, 거듭하여 읽을 때마다 늘 새롭게 다가오고 다르게 이해되며 색다른 울림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예컨대 나는 괴테의 ≪친화력≫을 지금까지 한 네 번쯤 읽었는데, 만약 지금 그 책을 또 한번 읽는다면 그것은 젊은 시절 처음으로 엄벙덤벙 읽었던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생각을 바꿀 수 없다. 큰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일은 진지하게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이다. 인류를 존중한다면서 자기가 부리는 하인은 괴롭히는 것, 조국이나 교회나 당은 신성하게 받들면서 그날그날 자기 할 일은 엉터리로 대충 해치우는 데서 모든 타락이 시작된다. 이를 막는 교육적 방책은 오직 하나뿐이다. 즉 스스로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신념이나 세계관이나 애국심 같은 이른바 거창하고 신성한 모든 것은 일단 제쳐두고, 대신 사소한일, 당장에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다. 자전거나 난로가 고장나서 기술자에게 수리를 맡길 때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인류애도 애국심도 아닌 확실한 일처리일 것이요, 그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할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영혼 사이에 보초병, 즉 의식, 도덕률 같은 치안당국을 하나씩 세어두어, 그 영혼의 심연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대면하는 대신 늘 먼저 이런 장치들의 검열을 거친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영혼의 영역보다는 오히려 이들 경비초소에 끊임없이 불신의 눈길을 보낸다. 시인은 마치 두 집 살림하듯 이편과 저편,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남몰래 넘나든다.

 

올바른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익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 특히나 문학작품을 읽노라면 비단 몇몇 인물과 사건들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작가의 방식과 기질, 내면의 풍경, 나아가 작풍이나 예술적 기법, 사고와 언어의 리듬까지 접하게 된다. 한 권의 책에 사로잡힐 때, 작가를 알고 이해하기 시작해 그와 모종의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그 책은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도야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원칙과 길이 있다. 그것은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이다.

 

인도가 고행과 금욕으로 세상을 버림으로써 고귀하고 감동적인 경지에 이르렀다면, 중국은 본성과 정신, 종교와 일상이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로 양자 모두 긍정되는 그러한 정신세계를 일구어냄으로써 인도 못지않게 비범한 경지에 도달했다. 극단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인도의 금욕적 지혜가 청교도적인 젊은이라면, 옛 중국의 지혜는 분별력과 유머를 겸비한 노회한 어른이었다. 경험 때문에 좌절하지도 잘 안다고 무례히 굴지도 않는 그런 어른 말이다.

 

의무감이나 호기심으로 딱 한번 읽은 것만으로는 결코 진정한 기쁨과 깊은 만족을 맛볼 수 없으며, 기껏해야 일시적인 흥분을 야기할 뿐 금세 잊혀지고 만다. 하지만 혹시 어떤 책을 처음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거든 얼마쯤 지난 후에 꼭 다시 읽어보라. 두 번째 읽을 때 비로소 그 책의 진수를 발견하게 되고,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글 고유의 힘과 아름다움이라 할 내면의 가치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인지 모른다.

 

자신의 취향에 대한 불안과 불신, 소위 전문가와 권위자들이 내리는 판단에 대한 터무니없는 존중은 대게 잘못된 것이다. 최우수 도서나 최우수 작가 100선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절대적으로 정확한 비평이란 것도 없다. 경박하고 피상적인 독자라면 어떤 책에 흠뻑 빠져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그랬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서 부끄러운 침묵을 지키기도 할 것이다.

 

그는(독자) 모든 것과 더불어 유희하는데, 어떤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과 더불어 유희하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다. 이러한 독자는 어떤 책에 나온 멋진 구절이나 지혜와 진실이 담긴 말을 보면, 시험삼아 한 번쯤 뒤집어 본다. 모든 진리는 역도 참임을 이미 터득한 사람이다. 모든 정신적 입장이란 하나의 극極이며, 거기에는 등가의 반대극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 상상력과 연상능력이 최고조에 이를 때 우리는 종이 위에 인쇄된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은 것을 타고 떠오르는 충동과 영감의 물결 속을 헤엄쳐 다니게 된다. 텍스트에서 나오는, 어쩌면 오로지 활자화된 모습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그런 충동과 영감이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먼 유년의 한 조각, 잠복되어 있던 유전자의 편린이 떠오르고, 동시에 아름답고 소중하고 고상한 전통은 수없이 와해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는 걸 아무리 붙잡으려 해봐야 아무 소용없으며, 새로이 부상하는 것을 무시와 조롱으로 막으려 한들 더더욱 부질없는 짓이다. 전쟁도 혁명도 그걸 막을 수는 없었으며, 완고한 이들이 외면하며 눈을 막고 귀를 꽉꽉 틀어막아도 구세계는 결국 산산 조각이 나게 마련이다.

 

진리를 뒤집어보는건 언제나 유익하다. 한 시간 동안 내면의 그림을 거꾸로 걸어두면 사고가 더 유연해지고, 다채로운 착상이 좀더 활발하게 떠오른다. 그리하여 우리의 작은 나룻배가 세상이라는 큰 강을 타고 더 매끄럽게 나아가게 된다. 만일 내가 교사여서 수업을 해야 한다면, 학생들에게 작문 같은 걸 시키게 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한 시간씩 뚝 떼어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얘들아, 우리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좋은 거란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정한 원칙과 진리를 한번쯤 시험 삼아 뒤집어 보려무나!”라고 말이다.

'책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0) 2013.11.29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0) 2013.10.29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0) 2013.08.28
리딩으로 리드하라  (0) 2013.05.28
그리스인 조르바  (0) 2013.04.24